간호 개념의 변천과정
간호학(Nursing Science)은 간호(nursing)라는 개념과 과학(science)이라는 개념이 합쳐진 복합 용어로써 인류의 생존과 더불어 존재하였고 본능적인 발달 기능의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도 간호는 과학적이든 비과학적이든 인류의 건강을 유지 증진하는데 필수적인 돌봄(care)을 제공하는 학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건강에 대한 사회의 태도와 안녕 상태(well-being)는 간호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들 또한 간호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사회 문화적 상황에 따라 간호사에 대한 인식은 건강 관리 전달에 있어 단순한 행위자로부터 전문 직업인으로 발전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간호란 간호의 정의, 간호의 초점, 간호의 목적, 간호의 행위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간호학자의 시대적인 배경과 그 시대의 사상적인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간호는 사회의 건강 요구에 대한 봉사 전문직이므로 사회 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면 본장에서는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간호의 개념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1) 고대와 중세의 간호
원시인의 의료와 간호는 본능적인 것에서 경험적인 것으로 경험적인 것에서 미신적인 것으로 차츰 변해 왔음을 알 게 된다.
인간의 모성애적인 본능을 표현한 돌봄과 보살핌(caring)으로 단순하고 협의적인 간호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박애 정신의 발로로 가난한 환자를 중심으로 하는 돌봄과 보살핌을 포함한 보호함(protectiong)의 간호였다.
로마 시대에는 부유하고 유능한 귀부인(Roman marton)들 중에서 복음의 실천으로 투신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내세를 위한 목적에서 질적으로 좋은 간호를 하였다.
종교적 간호단은 수녀간호단(order of sister)을 계기로 많이 발족되었는데 이 수녀단들은 각기 독특한 규칙과 간호 대상이 있어서 그들의 전통으로 수립했고 고상하고 지적인 많은 훈련을 받아서 헌신적인 사회봉사를 했으며 질적 수준이 놓은 환자 간호를 하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카톨릭(구교)교회 세력을 급격하게 쇠퇴시켰으며 직접적으로 간호 사업에 큰 영향을 끼치었다.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국가나 도시를 행정부로 운영권이 넘어갔으며 교회나 수도원의 대부분이 폐쇄되어 간호할 수녀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간호사의 교육이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자연히 무식하고 사명감이 없는 여자들이 돈만을 위해 고용되었고 비위생적인 병원 환경으로 인한 입원 환자의 사망률이 높았다. 이때의 간호사들은 보잘 것 없는 봉급을 받았으며 좋지 못한 근무 환경에서 장시간을 일하였고 사회적으로도 매우 낮은 대우를 받았다.
17세기 후반기부터 나이팅게일이 나타난 19세기 중엽까지의 약 200년간은 간호의 암흑시대였다.
19세기에 들어서 종교로부터 독립한 사회복지 활동의 하나로서 간호가 사회에서 점차 인정받게 되었으며 사회 개혁 운동이 간호사와 여성이 역할을 전반적으로 변화하게 하였다.
미침 그 무렵 영국에서 근대 간호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Florence Nightingale(1820~1910)이 출현하여 간호의 기틀과 방향을 잡아 주는 것으로 공헌하였으며 20세기 간호로 이끌어 주어 높이 평가되고 있다.
Nightingale은 “간호란 자연적인 치유가 잘 이루어지도록 환자를 가장 좋은 상태로 보존시키는 것”이라 하였고 “질병과 상처를 예방하고 치유하도록 하여 건강을 회복 또는 유지하도록 환자를 가장 좋은 상태(best possible state)로 유지기키는 것”이라고 유지(maintaining)를 강조하였다.
Nightingale은 이에 부가하여 간호란 단순히 질병 중심이 아니라 전인으로써 간호할 것을 강조하였다. 즉 질병으로부터 회복은 물론 일반 위생, 질병 예방, 건강 유지까지 포함한 포괄적인 간호를 하게 되었다.
2) 현대의 간호사(看護史)
20세기 초기에는 간호에 여러 가지 변화가 영향을 주었다.
병원에서는 진단에 따라서 환자들을 분리하였고 간호사들도 이에 따라 특수화(전문화)하게 되었다.
또한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군대 간호(army nursing)와 산업 간호(occupational nursing, industrial nursing)등 특수 간호가 성장했으며 각 교육, 산업, 교통기관 등 집단은 물론 지역사회를 위한 일차 건강 간호와 건강 교육이 간호의 큰 분야를 차지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후에는 간호 교육에 있어서 교과과정 수준의 향상과 교육이 향상됨에 따라 간호 실무의 초점이 의의 있게 넓어졌으며 간호사들은 여러 분야에서 전문인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간호 과학에 있어서는 지식의 발전과 팽창이 있으며 간호의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어 미국의 간호 단체들은 활달하게 창의력을 발휘하여 간호의 개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현대 간호의 개념은 인간을 총체론(holism)적으로 접근하는 대상자 중심의 간호를 지향하고 있으며 또한 인간의 건강 유지, 증진 및 최적의 건강 유지를 위한 돌봄의 제공으로 대상자의 건강 잠재력을 극대화하는데 간호의 목적을 두고 있다.
이상과 같은 간호의 발달 과정을 토대로 볼 때 간호는 자기 간호, 가족 간호, 종교적 간호, 지업적 간호의 형태를 거쳐 현대 전문 간호에 이르게 된 것이다.
3) 한국의 간호사(看護史)
한국의 간호는 일반 여성을 위한 신문화 더불어 서구 문화에 의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일반 여성을 위한 신문화 운동과 더불어 서양 의학의 유입은 갑신정변(1984) 당시 개화당이 제시한 혁신 정책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첫 번째 서구식 병원인 광혜원이 1885년 고종의 윤허로 설치되므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서양의 기독교는 선교활동과 더불어 의료사업과 교육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때 간호는 의료사업의 중요한 부분으로 한국 사회에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1903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Margaret J. 와 Mary Cutler에 의해 처음의 간호사 양성소가 정동의 보구여관에 개설되어 간단한 학과목 이수 및 실습에 잘 적응하면 uniform착용을 허용하였다.
또 한편 1906년에 E. L. Shields는 세브란스 병원에 간호원 양성소를 설립하여 간호 교육을 실시하였다.
1910년에는 한일합방으로 일본식 간호가 유입되면서 환자의 전인 간호보다는 의사를 보조하는 일을 주된 역할과 기능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1923년부터는 부분적이기는 하나 착실한 보건 간호 특히 모자 보건 간호가 실시되었으며 이 사업은 ㅎ일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1924년에는 간호 교육제도가 정부의 인가를 받아 졸업생에게 면허를 줌과 동시에 산파와 간호사의 두 가지 여성 직종의 개업이 가능했다.
간호 교육의 정착기는 1945년 광복 이후로서 대한민국으로 독립된 이후 보건사회부 내에 전국의 간호 사업을 총괄하는 간호사업과가 의정 구내에 설치되었고 육군에 정식으로 한국 간호 장교단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38선 이남에는 미군정을 통해 전쟁 중 몹시 떨어졌던 각 방면을 통해 이루어졌다.
1949년에 대한 간호 협회가 국제 간호 협의회(I.C.N) 정회원국으로 가입됨으로써 공식적으로 구제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1950년에는 6.25동란으로 간호 업무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1955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내에 간호학과로 정규 4년데 대학 과정이 간호 교육면에도 획기적인 발전이 이었다.
1960년 이후 간호사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국내 간호 인력이 수급 부족이라는 명분 아래 간호 업무의 무리한 팽창과 운영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켰다.
1970년에는 문교부의 학제 변동 방침의 일환으로 초급대학령에 준한 각종 학교에 속했던 간호학교가 간호 전문학교로 대부분 개편되었다.
1973년에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조산원과 업무별 간호사의 자격 기준이 설정되어 보건 분야 간호사, 마취 간호사, 정신 간호사의 자격을 인정하였으며 또한 문교부 학제 변동의 일환으로 간호 고등기술학교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76년 3월에 임상간호원회가 조직되었고 1978년 5월에는 재카나다 한인 간호협회가 창립되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대학원 간호학 박사학위 과정이 연세대학원에 이어 1979년도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 개설되었고 그 후로 서울대학, 경북대학, 카톨릭대학에서도 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1981년 6월에는 국제 간호협의회 이사국으로 피선되었다.
그후 1985년 9월에는 재독 한인 간호협회가 창립되고 1990년에는 국제 간호협회회장으로 김모임 회장이 피선되었고 1991년에는 산업 간호사회가 조직되었으며 1993년에는 대한간호협회 창립 70주년 기념 행사가 거행되었으며 연이어 국제 간호 협의회 이사국으로 피선되었다.
최근들어 국가 기본정책이나 보건의료 현실은 간호 인력의 증원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으며 간호계 역시 현실을 무시한 채 일방적인 입장만을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과학화가 혹시 인간 소외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에 관한 문제다. 병원이라는 곳은 병균과 이를 정복하려는 과학의 싸움터가 아니라 환자와 간호사와 의사라는 사람들로 이뤄진 하나의 특정한 삶의 세계로서 관계와 의미로 정서의 결정체인 것이다.
과학화는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하지만 과학을 문화의 틀 속에 수용하지 못하면 비인간화을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간호 분야에서는 무엇보다도 과학화된 미래에서 인간이 과학과 문화를 조화시켜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며, 신뢰받는 전문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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